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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의 도시'로 가는 길…명예영사에 듣는다 <2> 도용복 엘살바도르 명예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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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36회 작성일 20-02-27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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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0일 근무에 65일 오지탐험
- 172개국 여행… 올 12개국 계획
- 6·25전쟁 원조국에 ‘결초보은’
- 강도가 여행가이드 되는 체험

- 엘살바도르와 음악 중심 교류
- 한국 기업 현지진출 많이 도와
-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계기
- 부산, 동남아와 인연 이어가야

“엘콰도르 오지 여행 때였죠. 제 숙소는 외진 곳 작은 도미토리였습니다. 일박에 우리 돈으로 7000원 하던 곳이었죠. 하루 일정을 끝내고 밤에 숙소로 들어가던 길이었습니다.”


도용복 엘살바도르 명예영사가 부산 부산진구 사라토가 사무실에서 바람직한 도시 외교 방안에 관하 이야기하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숙소로 접어드는 좁은 골목에서 건장한 삼인조 남성이 다가와 그를 덮쳤다. 칼을 들이대며 돈을 몽땅 내놓으라고 했다. 그들은 강도였다. 오지 탐험을 하면서 이런 일을 가끔 겪고 들었던 그는 까딱 판단 잘못하면 목숨이 날아갈 상황임을 직감했다. 도용복(76) 엘살바도르 명예영사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가진 걸 시원하게 넘겨줬죠. 그렇게 선선히 가진 걸 내놓는 사람은 처음인지 그들도 얼떨떨해하더군요.” 그런데 중요한 건 ‘선선히 금품을 내놓은 것’에 있지 않다. 그 순간 그가 했던 생각과 돈을 뺏으려던 그들에게 했던 말에 새길 만 한 메시지가 있다, “제가 그랬죠. 에콰도르는 6·25 전쟁 때 한국에 물자를 지원해준 나라(38개 물자지원국 가운데 하나)다. 너희 덕분에 우리나라는 살아남은 셈이다. 너희에게 주는 건 아까울 게 없다. 그렇지만 비상금만은 남겨주라. 내일 밥 사 먹을 돈도 없게 생겼다. 안 그러면 너희가 날 좀 재워주든지.”

그들은 긴장이 풀렸는지 웃으며 그에게 30달러를 남겨줬다. 숙소에 무사히 도착해 살펴보니 그들이 칼을 댄 허리춤의 옷이 찢겨 있었다. 도 명예영사가 덧붙였다. “그런 식으로 만났다가 저의 여행가이드가 된 현지인도 꽤 있습니다.”

부산에 본사를 둔 골프용품 기업 사라토가 회장인 도 명예영사는 “예를 들면, 6·25 전쟁 때 한국을 도와준 나라에 대해서 한국은 은혜를 잊지 않으며 반드시 보답한다는 인식을 확고히 심는 방법과 마음가짐을 부산이 갖추는 것”을 제안했다. “명예영사로서 부산의 현명한 도시외교 방안은 어떤 것이겠느냐”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는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인상 깊게 지켜봤다”며 “그 성취가 일회용으로 끝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분들과 그 나라 국민이 다시 오도록 인연을 이어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 명예영사는 좋은 도시외교 방안으로 친절과 문화의 힘을 일관되게 꼽았다. 사실 오지탐험가, 음악 애호가, 강연가, 명예영사, 기업인 등으로 두루 널리 알려진 도 명예영사는 아무리 오래 인터뷰해도 그 시간이 짧게 느껴질 만큼 이야깃거리·사연·경험·메시지가 풍부한 유명 인사다. 극도로 압축해 소개해보면 이렇다. 1943년 경북 안동 풍산에서 태어난 그는 6·25 전쟁 때 안동경찰서장이던 아버지를 여의는 등 큰 아픔을 겪는다.

“밥을 준다”는 조건 하나로 한국전쟁 격전지로 유명한 다부동 고지로 짐을 날랐던 꼬마 도용복은 중학교를 나온 뒤 무작정 부산으로 왔다가 “태평양을 보고는 그 광경에 설레” 정착한다. 소년 시절 부두 노동을 하는 한편 중앙동 다방에서 디스크자키를 보며 음악의 힘을 느낀다. 월남전이 터지자 자원입대해 위생병으로 복무한 뒤 귀국해 사업을 시작한다. 하루 4시간 자는 엄청난 부지런함으로 사업에 성공하고 오십 대에 접어들면서 세계 오지 탐험을 시작했다. “1년에 300일 일하고 65일 세계 오지를 탐험하는” 원칙을 실천하다 보니 172개국을 여행했다. 이번 달부터 12개 나라를 더 돌고 오면 184개국이 된다. “무모하다”며 모두 말리던 우즈베키스탄 골프장 경영에 뛰어들어 10여 년 만에 가치를 20배 올리며 큰 성공을 거둔 데는 ‘홀로 하는 오지 탐험’에서 얻은 통찰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영화 ‘국제시장’ 주인공을 능가하는 파란만장이다.

“그런 삶을 살다 보니, 탐험 도중 죽을 고비도 꽤 넘겼지만 친절·환대·문화의 힘을 절감했다”고 그는 말했다. 2004년 엘살바도르 명예영사로 위촉된 것 또한 현지를 여행할 때 그곳 가객들에게 친절을 베푼 것이 계기였다. “명예영사가 된 뒤 음악을 중심으로 문화교류를 많이 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 기업이 엘살바도르에 진출하도록 ‘다리’도 많이 놓게 됐다.”

도 명예영사는 “친절과 문화의 힘으로 먼저 우호의 다리를 놓으면 경제교류도 따라 오는 것을 많이 봤다. 부산 도시외교도 문화의 힘에 주목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조봉권 편집국 부국장 겸 인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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